연예인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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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23-10-3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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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

최충헌


이전까지의 무신집권자들과 달리


천수를 누림은 물론 아들에게 권력을 상속하여


증손자까지 이어지는 최씨정권을 세운 인물


image.png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

이 최충헌의 인생 최대 위기였다고 한다면


희종이 배후에 있던 그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을 꼽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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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결국 미수에 그쳤고


되려 국왕이 폐위되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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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최충헌의 바로 앞까지 저승사자가 왔다 갔던 이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 확실한데


최충헌은 희종을 특별관리하여


강화도에서 자연도로 그리고 다시 교동도로 유배보내는 등의 조치를 했어


물론 그 와중에 희종의 처지는 비참해졌는데...


한때 일국의 군주였던 사람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쌀 6가마에 불과했지만...


부하를 통해 그 보고를 들은 최충헌은


왕준명(내시낭중의 직책에 있던 인물로 희종의 명을 받아 최충헌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의 일을 다시 생각하면 자신의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며


희종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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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219년 희종은 개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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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최충헌의 다섯째 아들 최전과 희종의 셋째딸 덕창궁주가 혼인하여


한때의 정적이 사돈이 되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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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려의 공주들은


족내혼을 하였지만...


무신정변 이후 무신들은 공주와의 혼인을 노리고는 했는데...


최충헌이 마침내 정실 소생의 공주를 며느리로 맞은 것이지...


* 희종은 폐위된 이후 상술하였듯이 비참한 처지였으나... 형식적으로는 태상왕이었던 것으로 추정됨


* 또한 덕창궁주는 고려 왕실의 족내혼의 결과로 선대 왕들과 여러 갈래로 얽혔는데... 그녀의 외할머니는 명종의 딸이었으며, 증조모는 인종의 딸이었어


* 이 혼인은 고려 역사에 있어서 정실 왕후 소생의 적녀가 족외혼을 한 유일한 사례에 해당함


* 최전은 후일 무신집권자가 되는 최우의 이복동생으로 그 어머니는 본래 손홍윤의 아내였으나... 최충헌이 손흥윤을 죽인 후 미녀였던 그녀를 첩으로 삼았던 경우였어(후에 최충헌이 강종의 서녀인 정화옹주와 혼인하자 그녀도 '수성택주'라는 작위를 하사받음)


image.png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

희종 입장에서는 딸을 족외혼하게 한 것을 굴욕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 덕분에 개경에서 다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었어


하지만 8년이 지나고


최우 시절(최충헌은 사돈을 맺은 그해에 사망) 희종에 대한 복위 시도가 있었고


그의 밀지 또한 발견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희종은 다시 강화도에 이어 교동도로 유배가게 되었으며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1237년 향년 56세로 붕어...


image.png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


* 글을 마칩니다.

image.png 의외로 최충헌과 사돈이었던 사람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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