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조선 영조 시절, 왕과 중신들이 입모아 또라이라 칭한 자[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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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23-10-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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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_115145.jpg 조선 영조 시절, 왕과 중신들이 입모아 또라이라 칭한 자
그것은 영성군 박문수. 초상화의 눈빛부터 심상치 않다.

1737년(영조 13년) 9월(윤달) 5일, 영조는 막 모친상을 탈상한 박문수(46세)를 불러들였다.
“경을 아는 자는 경이 나라를 위한다고 하고, 경을 모르는 자는 경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내 오랫동안 경의 광당(狂戇)한 말을 듣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경의 말을 취해 택할 것이다. 다만, 경의 자질과 품성에 비할 때 학문이 부족하다. 학문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자 박문수가 대답했다.
“신도 학문이 좋은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문은 한갓 겉치레로 귀결되고 있으니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신은 비록 학문이 없지만 옛사람에 견주어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狂 : 미칠 광
戇 : 어리석을 당
광당을 말 그대로 옮기면 미친데다 어리석다는 뜻이나, '당'은어리석을 우(戇)와 비슷하게 긍정적으로 고지식하다/곧다 라는 의미로 많이 쓰였으므로 "미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뜻이 크고 곧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박문수에 대한 당대 조정의 평은 "저거 완전 또라이인데, 그래도 일처리는 사심없이 잘하는 위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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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잘하는 또라이)

박문수는 당시 조정의 소수파였던 소론에 속하였는데, 반대파인 노론은 물론이거니와 소론 사이에서도 독불장군으로 평가받았다. 당파를 막론하고 (본인 기준에) 사리에 합당하지 않으면 왕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도 대놓고 목소리 높여 논쟁하는 일이 잦았다.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당파에 휘둘리지 않는 면에서 영조가 재위 내내 집착했던 탕평에 걸맞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영조는 (왕권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한 사이코패스임을 감안하면 실로 경이로울 정도로) 박문수를 크게 아끼고 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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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의 일화에서임금이 학문에 힘쓰라고 훈계했는데 신하가 "그럴 필요 없다, 자신은 이대로 충분하다" 고 대답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무례한 일이다. 사이코패스 영조가 아니라 성격 온후했던 성종이었다고 해도 벼루를 집어던질 법한 언동이다. 그러나 영조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그래, 우연하게도 경이 옛사람과 일치하긴 한다."
의역하자면 "니가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지껄이는 배포만은 고사에 등장하는 선비들같기는 하다. 내 그러니 너를 좋아한다" 정도라고 하겠다.

20231030_121126.jpg 조선 영조 시절, 왕과 중신들이 입모아 또라이라 칭한 자
(?? : 박문수에게는 그리 다정했으면서 나한테는 왜 그랬어요?)

물론 박문수가 초인적으로 유능했으니 저렇게 말뽄새가 지랄같았어도 왕의 총애를 받은 것이기는 하다.
-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에서 토벌군의 종사관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워 그 공로로 2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포텐에 간 "조선시대판 군대 뒷담화" 에 나온 일화가 이 때의 일이다)
- 1730년(영조 6년) 군역제도의 폐단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영조대를 대표하는 개혁책인 균역법 시행의 빌드업을 쌓았다.
-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역임하면서 바로잡고 개혁한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특히 호조판서 재임 시 만든 재정운영체계인탁지정례(度支定例)는 트집왕 정조가“물샐틈없이 완벽하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홍재전서 17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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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를 입은 지방의 구휼을 위한 관찰사로 임명되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영조의 스탠스는 한결같이 "중앙 재정도 어려우니 예산은 크게 지원해주지 못한다, 대신 줄 수 있는 게 권한 밖에 없네" 였다. "아니 제가 충무공도 아니고 무슨 수로 예산도 없이 구휼을 해요?"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대부분의 경우 어떻게든 인근 지방에서 재원을 마련하여 급한 불을 껐으니 실로 영조의 소방수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헌신에 대해 영조는“깊이 생각하고 널리 염려하여 일을 맡으면 반드시 효과를 거두니, 백성들로 하여금 국가가 있음을 알게 하는 사람은 경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라고 치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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