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아시리아가 기록한 아랍인 여왕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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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268회 작성일 23-11-01 02:05본문

아랍인 무슬림들은
이슬람 이전 자신들의 역사를 '무지의 시대' 즉 자힐리야 취급하고는 해

관련하여 여성인권에 대해서도
이슬람이 극단적인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던 아랍인들의 의식을 개선하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그것은 분명 어느 정도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어
다만... 기독교를 믿던 아랍인 여왕을 비롯하여 정치권력의 측면에 있어서 아랍인 여성들은 이슬람 이전 시대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갖고는 했지...

관련하여 고대 아시리아인들 또한 아랍인들의 여왕에 대한 기록을 남겼어

기원전 741년 아시리아의 군주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시리아 지역의 골칫덩이 아르파드 왕국을 마침내 정리하는데 성공해
또한 그 전쟁의 과정에서 야디야(삼알), 운키(파티나) 그리고 시리아 해안에 있는 그 동맹국들과 전쟁이 있었는데...
그 결과는 북서부 시리아가 아시리아에 병합되고 페니키아는 그들의 속국이 되는 것이었지(기원전 742년)
이러한 아시리아의 승리는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공포에 사로잡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왕들이 앞다투어 조공과 선물을 바쳤어
그 목록을 보면 카르케미시, 쿠에(킬리키아), 하마의 왕이 있었고
다마스쿠스의 왕 라수누(르신)와 이스라엘의 왕 므나헴도 있었으며
'아랍인들의 여왕' 자비베 또한 있었지
아시리아인들은 그저 자신들의 조공셔틀 중 하나로 자비베를 기록하였을 뿐이지만
이 기록은 고대 아랍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종족이 이미 그 시대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서쪽 모퉁이에 침투한 것을 알려주는 자료이기 때문이야...

한편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이란 지방과 우라르투에 집중하던 사이
아시리아의 입장에서는 지중해 연안의 상황이 악화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티레와 시돈이 소요를 일으킨 것이지(페니키아인들 입장에서는 정당한 저항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아시리아는 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 및 이집트와 교역하는 것을 금지했어)
아시리아인들은 이때 이투인들이 개입하여 "사람들을 떨며 굽실거리게 했다"고 비난하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아스칼론과 가자의 팔레스타인 군주들이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과 트랜스요르단 지역의 통치자들을 모아 동맹을 결성한 것이었지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이러한 문제를 아시리아의 군주답게 해결하는데...
물론 그것은 '무력'을 통한 해결로
기원전 734년 아시리아의 군주는 친히 출정하여 '반란자'들을 징계하였어
그 결과 아스칼론의 왕은 전사하고 가자 사람은 '새처럼' 이집트로 달아났으며
암몬, 에돔, 모압, 유다와 함께 아랍인들 또한 조공했는데
이때 조공을 바친 아랍인 군주 또한 '샴시'라는 이름의 여성이었지...
아시리아인들은 그녀들의 내치에 관한 정보는 전해 전해주지 않아...
하지만 그들의 기록을 통하여
고대 아랍에 여왕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