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아시리아의 멸망[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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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221회 작성일 23-11-01 19:11본문
저 유명한 '아슈르바니팔'이야...
하지만 그의 명문은 기원전 639년경에 갑자기 멈추지...
그리하여 그의 치세의 마지막 몇 년은 어둠 속에 빠져들어
* 더구나 어떤 연대기나 연호관리 목록도 기원전 639~627년의 시기를 다루고 있지 않아서 이 어둠은 더욱 깊지...

이 시기에 관한 유일한 정보원은 헤로도토스라고 할 수 있어
다행히도 그는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역사를 충분히 잘 알고 있었지
이 정보원은 메디아 왕 프라오르테스가 아시리아를 공격했으나 전장에서 죽고 그의 아들인 키악사레스(진짜 이름은 우바르크샤트라)가 왕위를 이었다고 이야기 해
또한 메디아는 곧 스키타이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지배는 28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자그로스를 넘은 스키타이인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아시리아와 시리아-팔레스타인을 지나갔다고 해(만약 프삼티크의 매수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집트에도 들어갔을 것이었지...)
하지만 메디아인들은 결국 반격을 하는데
키악사레스는 잔치 도중 술에 취한 스카타이의 수장들을 살해함으로써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고 함...
헤로도토스는 다른 일화에서 스키타이인이 니네베에 대한 메디아의 공격을 꺾었다고 주장하는데
사르곤 왕조가 스카티아와 맺었던 우호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슈르바니팔은 이들의 우두머리인 마디우스와 동맹 조약을 맺었던 것 같은데...
물론 '역사의 아버지'의 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키타이의 기병대가 아시리아 영토를 이 끝부터 저 끝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아무 저항 세력을 만나지 않은 채 이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야...
* 이는 놀라운 일이며 아시리아에게 굉장히 불길한 징조였다 할 수 있어...
* 스키타이인들은 결국 아시리아를 멸망시키는 연합군 중 하나로 합류하게 됨

일반적으로 아슈르바니팔은 기원전 627년에 죽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그는 칸달라누(아슈르바니팔이 바빌론에서 왕위에 등극시킨 아시리아의 괴뢰)가 죽은 해와 같은 해에 사망한 것이야...
이 시점부터 자료가 좀 더 많기는 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대를 정하기 위해서는
두 권의 바빌로니아 연대기(공백도 있고 서로 6년간 떨어져 있어)와 바빌로니아 여러 도시에서 나온 계약서의 연대에 의존해야 해
그래서 연대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생겨났는데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 부분을 소개하면
늙고 병든 아슈르바니팔은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한 내분을 방지하고자 기원전 630년 스스로 퇴위하고 아들 아슈르-에틸-일라니에게 왕권을 넘겼다는 것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슈르바니팔은 바빌론에 대한 이론상의 통치권은 칸달라누를 매개로 하여 지켰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칸달라누가 죽자마자 남부의 상황은 악회되었어
아시리아의 한 장군은 자신을 바빌론의 왕으로 선포하였으며
그는 바로 제거되었지만
아슈르바니팔의 다른 아들인 신-샤르-이슈쿤이 자신을 바빌론의 왕으로 선포했지
그 와중에 왕위를 주장하는 세 번째 인물이 일어나는데
그는 '칼데아인' 나보폴라사르였어
나보폴라사르는 자기 출신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처음에는 수메르 지방의 몇몇 도시를 다스리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던 반면
신-샤르-이슈쿤은 수도에 자리잡았지만
그는 아시리아의 왕위를 놓고 그의 형제와 싸움을 벌였지
형제는 4년 동안 파란만장한 내전(바빌로니아의 3분의 2를 피로 물들였다고 하는...)을 치렀고
아슈르-에틸-일라니는 직접 친정하였지만 기원전 623년 니푸르 근처에서 전사하였어
신-샤르-이슈쿤은 승자가 되었고
그는 제국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니네베로 갔지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본래 자신을 막아낼 목적으로 배치된 아시리아 군대를 거느리고 갔는데...
아시리아 국가 입장에서 그것은 뼈아팠던 실책으로
그때부터 칼데아인들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었어
그동안 이란에서도 제국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키악사레스는 아시리아의 본을 따 자신의 군대를 재조직하였어(물론 '아시리아 시스템'은 효율적이었지)
그는 자기 수도 엑바타나(하마단)에 있으면서 '세 메디아'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이란 고원 전체와 좀 더 남쪽에 있는 속국 페르시아를 지배했다는 말이야...
키악사레스는 동시에 우르미아 호수 주변에 있는 만나 지방을 위협하면서 스키타이인의 공격으로 허약해진 우라르투를 탐냈는데
이 중대한 시기 아시리아는 아슈르바니팔의 아들들의 내분(심지어 기회주의자 내시가 잠시지만 왕위를 차지하기까지 함)으로 붕괴되고 있었던 것...
아시리아에 대해 불만을 느꼈던 세력들은 일제히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엘람인들은 일정 수준의 독립을 회복하였고 국경 도시 데르가 반란을 일으켰지
반아시리아 열풍은 서쪽에서도 진행되어 페니키아의 도시들을 뒤흔들었으며
유다의 왕 요시야는 아시리아에 대한 조공을 끊음은 물론 전 이스라엘 왕국인 아시리아의 속주 사마리아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제단을 뒤엎고 우상을 분쇄'할 수 있었어
이런 상황에서 니네베의 주인이 된 신-샤르-이슈쿤은 바빌로니아 문제를 우선 처리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는 나보폴라사르에게 전쟁을 선포했지...
그 싸움은 7년간 이어졌는데... 아시리아는 자신들이 늘 차지하고 있던 요새들이 공격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고
칼데아인들은 니푸르를 빼앗고 마침내 수메르와 아카드 지방 전체를 해방하는데 성공했어
기원전 616년 공세를 취하는 쪽은 분명히 칼데아인들 이었는데
이 시기부터 명확하고 정확한 바빌로니아 연대기가 기록되어 니네베의 붕괴까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달별로 때로는 날짜별로 추적할 수 있게 됨
어쨌거나 나보폴라사르는 먼저 적을 탐지하였는데
그는 유프라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카부르강의 합류 지점에 이르러 그 강 연안에 정착해 있던 아람 부족들의 항복을 받고
그에 대항하여 파견된 아시리아와 만나의 군대를 패주시킨 후 하란 근교까지 쫓아갔어
이 성공으로 용기를 얻은 나보폴라사르는 몇 달 후 북쪽으로 두 번 연속 공격을 감행하는데
아라프하 근처의 소小자브강까지 이르렀지
이들은 한때 아수르까지 포위하였지만 결국 강력한 적군 앞에서 물러섰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직까지는 아시리아를 단독으로 무찌르기는 벅차다는 것을 인정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야(그래서 나보폴라사르는 엘람과 친선을 도모했지만 효과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함)
물론 아시리아 역시 자신들을 지원해 줄 외부 세력을 다급히 찾았는데...
신-샤르-이슈쿤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동맹을 맺자고 간청하였고
결국 그것을 얻어내었지...
그러나 한때 이집트를 점령했던 나라가 이제는 을의 입장이 되어서 이집트에 손을 내미는 상황이 된 것은 아시리아가 얼마나 나약한 상태로 몰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어
일찍이 아시리아는 유다인들에게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라고 경고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이 시점에 들어와서 아시리아인들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었지...
이집트는 동맹을 수락하기는 하였지만 아주 멀리 있었고 프삼티크 또한 전쟁에 그다지 깊이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그 파라오가 아시리아를 도와주더라도 그것은 보잘것없을 것으로 니네베로 몰려드는 역사의 흐름을 조금도 바꾸지 못할 것이야...)
기원전 615년말 메디아로부터 다시 한 번 결정적인 공세가 있었는데
메디아인들은 아시리아를 기습 공격하여 아라프하를 빼앗었어
그리고 그들은 기원전 614년 겨울 니네베를 향해 진군하여 타르비수를 점령한 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아수르를 기습 공격했지
그 소식은 신바빌로니아에도 전해졌는데
나보폴라사르는 아수르 성벽 아래까지 가서 키악사레스를 만났고
그들은 '상호친선과 평화의 관계'를 맺었다고 해
물론 그 관계의 목표는 아시리아였고 이 두 강적들의 동맹은 아시리아에게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이 동맹을 공고화하기 위한 혼인이 네부카드네자르와 아마티스의 결합)
물론 우리는 후대인으로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시리아의 저력은 인정하여야 하는데
기원전 613년 신바빌로니아는 유프라테스 중류 지방에서 단독으로 아시리아에 도전해봤지만
아시리아 군대는 아나트 앞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거두었어
하지만 기원전 612년의 공격은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 그리고 다른 이민족들이 합류한 연합군의 공격으로 이루어졌지(신-샤르-이슈쿤은 이러한 공격을 막기 위해 기원전 613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자존심도 버린 채 나보폴라사르에게 평화를 간청하였지만... 나보폴라사르의 반응은 니네베의 파괴를 공언하는 것이었어)
니네베가 연합군에게 포위된 절망적 상황에서도
아시리아인들은 3개월간 용맹히 저항하였지만
마침내 그 도시는 함락되고 말았어
그들은 아부 월(8~9월)에 그 도시를 향해 여러 날 동안 강한 공격을 퍼부어 점령하고 주민 대부분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 그날에 아시리아의 왕 신-샤르-이슈쿤은...(사형에 처해졌다?) 그들은 도시와 여러 신전에서 엄청난 전리품을 가져자고 도시를 텔과 폐허 무더기로 만들었다.
니네베 함락의 날은 아시리아인들에게 매우 길고 잔인한 하루였는데...
아시리아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던 민족들은 분노의 보복을 하였다고 해...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인들은 니네베를 포함한 주요한 도시들(칼후, 아수르)을 잃었지만
아직 제국이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았는데
아슈르-우발리트가 아시리아인들의 새 지도자가 되었고
그는 하란에서 저항을 이끌었어
이집트는 이때야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는데 파라오 네코는 아시리아의 완전한 멸망을 막기 위해 친히 출정하였지만
그는 중간에 유다 왕 요시야의 방해를 받아야 했지
물론 유다는 이집트의 적수가 아니었고 파라오는 요시야를 전사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집트군도 그러한 전투로 인해 피로하고 전력을 어느 정도는 손실한 상태로 합류하여야 했는데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병력 또한 아시리아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하란으로 진격하였어
이 싸움에서 승리는 칼데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것이었고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군대는 유프라테스 건너편으로 달아나야 했지
아슈르-우발리트는 기원전 609년 하란을 되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없었고 마침내 아시리아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그렇게 승리자가 된 나보폴라사르는 다음과 같이 아시리아에 대한 멸시와 미움이 가득한 비문을 작성하였지
"나는 수바르투 지방을 망쳐놓았다. 이 호전적인 지방을 폐허의 무더기로 만들었다. 아시리아인은 오랜 옛날부터 모든 민족을 지배하고 그 멍에는 나라 안 모든 주민의 피를 흘리게 했으나 나는 아시리아의 발을 아카드에서 몰아내고 그 멍에를 떨쳐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