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끔찍하고, 비열하며, 천박하고, 미신적인데다가, 음란하고 음흉한 왕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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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2-12 00:04본문
아버지가 프랑스 왕세자에게 암살당하자 격분한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가 잉글랜드의 편으로 돌아서며 프랑스 왕국은 큰 위기를 맞는다.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군은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북프랑스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으며 프랑스 왕세자 샤를 7세는 수세에 몰린다.
이 시점에 샤를 7세의 장남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루이 11세다.
루이는 불리한 전황을 서서히 역전시켜 나가는 아버지, '승리왕' 샤를 7세를 보며 성장하였고, 청소년이 되자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한다.
몇몇 전투에서 승리하고 프랑스 왕국의 유력자들과 충분한 친분을 쌓은 17살의 루이는 바로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진 프랑스의 공작들 몇몇을 충동질해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아쉽게도 반란은 실패했고 루이와 공모자들은 자비롭게 용서받는다.
하지만 다시 한동안 활약하던 루이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아버지와 충돌하였고,
아버지의 애인인 아녜스 소렐을 칼로 찔러 죽이려다 실패하며 프랑스 남부의 도피네로 추방당한다.
그래도 추방당해 보니까 철이 좀 들었던 것일까? 루이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게 되었다.
루이는 몇 년에 걸쳐 아버지에게 정중히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편지를 보내며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을 풀어 아버지가 애인한테 푹 빠져서 제대로 일도 안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다는 찌라시를 퍼트렸다.
루이의 음모를 알고 격노한 샤를은 당장 루이를 잡아오라고 도피네로 군대를 출정시킨다.
하지만 결단력 만렙 루이는 바로 부르고뉴로 달려가 아버지의 숙적인 선량공에게 망명을 신청.
선량공은 이 불손한 왕세자를 받아들여주며 샤를에게 엿을 먹인다.
이 소식을 들은 샤를은 선량공에게 언젠가 저 여우같은 놈이 너를 파멸시킬 거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부자지간의 정은 남아 있었던지, 몇 년 뒤 중병에 걸린 샤를은 추방을 취소하고 루이를 다시 파리로 불러들였다.
이 소식을 들은 루이는 즉시 점성술사를 불러 아버지가 죽을 정확한 날짜를 예언하라고 시켰다.
당연하지만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파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멋진 아들 덕분에 홧병이 걸렸는지 샤를은 증세가 악화되어 사망했고,
루이 11세는 프랑스의 왕으로서 위풍당당하게 부르고뉴군의 호위를 받으며 파리에 입성한다.
그런데 이 입성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매우 파격적이고 야사시한 패션을 즐기던 루이 11세의 옷차림을 본 몇몇 시민들이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던 것이다...
루이는 패션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기도 해서 수많은 성유물과 부적들을 옷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는데, 아마 패셔니스타로서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비로운 루이 전하께서는 그 시민들을 효수하는 대신 도시에 막대한 벌금을 물리고 넘어갔다고 하신다.
또한 루이 전하께선 매우 세련된 취미를 가지고 계셨다.
뒷골목 선술집에 눌러앉아 범죄자들과 함께 밤새도록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술을 진탕 퍼마시는 것이다.
이 선술집은 또한 인재 양성의 장소이기도 했는데, 루이는 입담이 좋은 불량배들을 특히 총애하였다.
아버지 샤를과 함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하들은 모조리 해임당했고 그 자리는 범죄자와 천민들로 채워넣어졌다.
물론 루이라고 고상한 취미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멋진 취미인 사냥을 사랑하시는 루이 전하는 좋은 사냥개와 말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아, 앞서 말했듯이 점성술사와 예언가들을 위해서도 수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
역시 문화부흥은 루황 ㅋㅋ
루이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의 동생 베리 공작 샤를과 부르고뉴 공작, 브르타뉴 공작, 로렌 공작을 비롯한 수많은 대귀족들이 "공공 연맹"을 창설해 반란을 일으켰다.
멋지게 승리를 거두고 왕권을 강화할 시점이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파리로 도망쳐 연맹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루이의 최선이었다.
충분한 배상금과 막대한 영지를 얻어낸 연맹은 만족하며 돌아갔다.
또한 루이는 역대 프랑스 왕 중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었다.
원래부터 병약하게 태어난 자신의 딸이 완전히 불임이 되었다는걸 알게 된 루이는 기뻐하며 딸을 자신의 친척인 오를레앙 공작과 결혼시켰다.
오를레앙 공작가의 대를 끊어 오를레앙을 집어삼키겠다는 속셈이었다.
말 그대로, 루이 11세는 매우 혐오스럽고, 비열하며, 천박하고, 미신적인데다가, 음란하고 음흉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매우 유능한 왕이였다.
점점 중요해지고 있던 부르주아 계급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상한 라틴어 문학 대신 소박한 취미를 즐기는 왕을 좋아했다.
상업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는 궁궐에 틀어박혀 고위 귀족들과 어울리는 대신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유능하지만 비천한 신분의 상인들을 발탁해 관료로 삼았다.
까다롭고, 자신들의 권리에 민감하며, 명예를 위해 기꺼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 관료들은 빠르게 범죄자들과 평민으로 대체되었다.
범죄자 관리들은 기강이 문란하고 잔인하고 제멋대로였지만, 귀족들과 달리 루이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즉시 교수대로 보낼 수 있었다.
수많은 부르주아들이 귀족 임명장을 받고 루이의 정부에서 일했고, 이들은 무역을 발전시키고 세금제도를 계혁했으며 전국에 우편 시스템을 만들었다.
루이는 수만 명의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 식량을 먹어치우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모두가 승리를 의심하지 않던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얼마나 비참한 패배를 당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명예를 모르는 루이에게 전쟁은 효율이 끔찍한 도박에 불과했다.
매수와 첩보, 음모와 선동이야말로 전쟁보다 훨씬 싸고, 효과적이며, 안정적인 선택지였다.
공공 연맹은 루이에게 승리하여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노르망디 공작령을 손에 넣었다.
오랜 기간 동안 잉글랜드의 영지였고, 프랑스에서 가장 독립적인 브르타뉴 공작령과 인접해 있으며, 불손한 귀족들로 가득한 노르망디 말이다.
기꺼이 자신의 동생 샤를에게 노르망디를 양도한 루이는 수많은 첩자들을 노르망디로 보내 반란을 충동질하고 브르타뉴 공작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를은 진절머리를 내며 노르망디와 가스코뉴를 교환하려고 했고, 루이는 기꺼이 동생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후 25살의 샤를은 부르고뉴 공작의 딸과 결혼하려다가 급사하고 가스코뉴는 루이에게 반환되었는데 우연일거다 아마.
루이에게 있어 최대의 적수는 부르고뉴의 공작, '용담공' 샤를이었다.
백년전쟁 말기, 선량공의 시대에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저울질하여 막대한 특권을 얻어내고 영토를 확장한 부르고뉴는 이제 일개 영주보다는 국가에 가까운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부유한 지역인 저지대를 차지하고 알자스 로렌과 스위스를 집어삼켜 중프랑크 왕국의 부활을 꿈꾸는 부르고뉴의 기세는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잉글랜드와 신성로마황제 역시 이 강대한 부르고뉴야말로 프랑스를 견제할 최고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첩자들이 일제히 부르고뉴 공국에 침투했으며, 무수히 많은 음모를 꾸몄다.
반란 유도, 용병대 매수, 정치적 갈등 조장, 기밀 유출...
루이 11세가 얼마나 많은 음모를 준비했는지, 한 번은 자기 자신이 부르고뉴 공작의 영지에서 반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부르고뉴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용담공과 티타임을 즐기다가 자신의 사주로 리에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게 된 루이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어쨌든 루이의 수많은 음모들은 결국 결실을 거두었고, 용담공 샤를은 하나뿐인 자식 마리를 남긴 채 스위스에서 전사했다.
마리는 이미 성인이었지만 여자라는 문제가 있었고, 루이는 당장 부르고뉴로 진격해 마리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켜 부르고뉴국의 모든 지역을 합병하려고 하였다.
결국 신성로마황제의 개입으로 저지대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부르고뉴 지방은 온전히 차지하게 된다.
가장 강대한 제후인 부르고뉴 공작이 몰락한 이상 루이에게 적은 없었다.
루이 11세는 매수, 협박, 음모, 회유를 적절히 조합하여 차례차례 프랑스의 모든 제후들을 제압해 나갔다.
그가 죽음을 맞이할 무렵이 되자, 프랑스에서 국왕과 독립적인 대영주는 브르타뉴 공작만 남았다.
다른 두 대영주인 오를레앙과 부르봉 공작은 왕의 혈족이었고, 2류 제후들은 왕실과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의 세력이 없었다.
이제 프랑스의 왕은 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관료기구와 자유로운 과세권, 막대한 상비군을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 왕국은 근대국가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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