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중국 역사지도가 원나라의 영토에서 고려를 빼버린 이유는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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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5-08-12 00:13본문
고려가 몽골제국이나 원나라에 포함되는 존재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의견이 다를수 있고 각자의 입장은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어
(참고로 몽골제국사로 볼건지, 원나라 역사로 보는지는 나라마다 관점이 다르고 결과물도 다를수 있어)
고려가 몽골제국에 포함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러시아 공후국, 이란 지역번국, 카프카즈 군주국, 위구르 군주국 등을 열거하며
고려의 특수성을 인정하면 몽골제국의 역사지도는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할테고,
반대로 고려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독자적 문화의 보존, 왕조와 독자적 행정통치의 존속,
행성 통치의 실질적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할수 있을거야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내 개인적 생각과 별개로
두 의견 모두 실증적 측면에서는 따져볼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https://www.fmkorea.com/8771355326
그럼에도 내가 (1)편을 올렸던 이유는 그 논점 하나하나에 실증적으로 개입하려는게 아니라,
"중국의 역사인식은 어떤 식으로건 공산당 중앙에 의해 영도되는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므로
그런 점은 파악하면서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내가 1편에서 언급했던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은
고려를 원나라의 판도에 포함시키지 않는 인식을 현대 중국사학계에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거기를 보면 <독자적인 왕조와 영토, 조정, 행정, 군대, 문화를 보유>하고 있어도
중국사의 판도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흔했어
즉 동일한 기준으로 중국 역대 왕조의 판도 경계선을 설정한게 아니라 제각각이었다는거지

가령 전한의 서역도호 지배 체제가 장사 감독 체제로 이완되었던 후한의 서역 경영이라는건
현지의 왕조와 군대, 문화의 독립성을 한층 더 전제하면서 영향력을 구사하는 방식이었지만
역사지도 편찬팀의 책임자였던 담기양은 전부 후한 왕조의 판도로 취급했어

제갈량, 손권과 싸우느라 바빴던 조비, 조예의 위나라가
현재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 왕조들에게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별개로 논증한다 치더라도
나름의 독자성이 강했던 그 지역을 위나라의 판도로 삼는 기준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시키고 있지

당나라가 현재의 이란 고원까지 진출해서 영역으로 삼았다는 주장은
그 지역의 군주들이 조공을 바치며 강대국들간 줄다리기 외교를 펼치던 시기의 복잡성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결과야
결국 중국학계의 영역 인식이라는건
사료와 논리를 둘러싼 학술적 실증과 토론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씨름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이념적 요구나 국제정치의 요구로 작동하는 측면도 동시에 봐야 한다는거지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이 편찬되던 시기 중국 최대의 이념적 화두는
몽골족, 티베트족, 회족이 하나가 되는 대중국 구호나 소련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프로파간다였어
이건 <원나라가 시베리아를 넘어 북극해까지 판도로 삼고, 최강의 수소폭탄인 차르봄바 실험이 이뤄진
노바야제믈랴 섬 건너편까지 원나라의 영토로 삼은 지도가 등장해야만 했던 이유>를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해